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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오악五岳이 있다. 이는 중국 고대부터 내려오는 오행사상五行思想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동서남북중의 오방위에 위치한 각각의 명산에 그 의미를 부여했다. 이 다섯 산에서 매년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며 황실의 안정과 백성의 평안을 빌었다고 한다. 이 다섯 산은 각각 동쪽 산동성山東省의 태산泰山, 서쪽 산서성陝西省의 화산華山, 남쪽 후난성湖南省의 형산衡山, 북쪽 하북성河北省의 헝산恒山, 중부 하남성의 숭산嵩山을 일컫는다. 이는 한나라때의 오악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각각 산에는 도교 사당과 불교 사원이 많이 있다. 이번에 가기로 계획한 곳은 오악중 동악, 중악, 서악이다. 비록 오악은 아니지만, 안휘성安徽省의 황산黄山이야말로 중국 명산중 명산이라 한다. 기암괴석, 소나무, 운해云海와 온천은 황산의 사경四景이다.
지금부터 여행할 곳은 태산이다. 이동루트 중 첫 번째로 통과하는 도시가 산동성 제남이고, 제남에서 쉽게 갈 수 있는 태산은 과거 노魯나라가 흥성했던 산동성에 있으며 이 곳에서 출생한 공자孔子가 평생 가장 사랑하였던 산이다. 게다가 오악중 으뜸이라 하여 고대 황제들이 봉선封禪 의식(황제가 자신의 치적을 하늘에 고하는 일종의 제사)을 하면서 더욱 유명해 졌는데, 황제중에도 특별히 치적이 많은 황제만 이 곳에서 제사를 올릴 수 있었고, 그 시초는 진秦나라 초대 황제인 시황제始皇帝였다. 역시, 시황제는 스스로를 무척 대단하다 생각 한 모양이다. (이 생각은 나중에 서안西安의 병마용兵马俑과 진시황릉을 보고 더욱 확고해진다.) 현재 태산 아래의 대묘垈庙라는 곳이 이 봉선 의식을 거행했던 장소라 하는데 9.6㎢으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제남에 도착했던 9월9일 아침부터의 메모이다.
am 4:55
도착 20분전.
좁은 자리탓에 몇번이고 뒤척였지만 나름대로 편하게 잔 것 같다. 없어진 물건도 없고.
(좁은 침대에 새로 산 트레킹화부터 베낭까지 모두 올리고 자느라 새우잠을 자야했다. -_-;;)
풀을 챙긴다는 것이 또 깜빡했네,
이 기차, 빠르긴 하다. 유럽의 떼제베나 이체(독일)와 비할 바 아니지만.
이제, 태산에 가까워오고 있다.
하루를 벌려다 모든걸 망칠 수 있다. 황산에서의 멋진 하루를 기대하며 이곳에서 하루의 여유를 갖기로 했다.
어쨌든 16일까진 사천 성도로 가야한다.
제남에서 태산까지 이동할 때 두 가지의 이동루트가 있다.
기차는 8:00 출발, 45분 가량이 소요되고 버스는 6:00 출발, 80분 가량 소요된다. 당연히 6:00 출발의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마침 시외버스 터미널은 기차역의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18위엔에 타이안泰安행 표를 한 장 구입했다.(타이안은 타이산 역의 예전 명칭으로 타이안 시市가 현재의 타이산泰山시이다. 버스 터미널에선 두 가지 명칭을 모두 사용한다.)
화 장실에 갔는데, 그곳엔 제복을 사랑하는 중국인이 있었다. 허리높이만한 칸막이가 있었고, 맞은편 벽쪽에는 플라스틱 통이 여러개 늘어져 있었으며, 그것들 안에는 그것(?)이 가득 차 있었다. 이 고대유물(?)과 다름없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댓가로 5마오毛(중국의 화폐단위. 10 마오는 1 위엔元이다. 마오보다 작은 단위도 있는데 1/10마오는 1쟈오角이다.)를 지불했다. 말로만 듣던 과거 중국의 유료 화장실. 올림픽 이후엔 이러한 곳이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
예쁘장한 여자 공안公安(중국에서는 경찰을 '공안'이라 부른다)들이 있는 제남의 시외버스 터미널. 이제, 중국인들이 태어나서 일생에 한번은 꼭 올라가야 한다고 믿는 그 태산으로...
버스를 타고 태산 도보트래킹의 시작점인 홍문에 와 있다.
시골 특유의 순박함, 향기가 묻어나오는 곳이다.
식당에 들러 밥을 먹고 짐 정리를 했다.
이제부터 중천문 까지는 무거운 베낭을 메고 가야한다.
물휴지로 대충 세수를 마치고, 비타민도 한 알 먹었다.
식사는 간단히 계란볶음밥과 토마토, 달걀볶음. 가격은 관광지라 그런지 식사의 질에 비해 비싼 16위엔.
이제, 출발이다.
※이 일기형식의 메모는 당시의 나의 심정과 상황이 나와있다. 원래 이 여행의 마지막에 사천의 성도에서 현재 중국에 살고 계신 큰아버지를 만나서 함께 베이징으로 돌아오려 했었다. 상황은 계속 바뀐다. 어느것이 더 옳은 결정인지 당시에 몰랐던 사실들과 자유여행의 특성상 무슨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이 메모에 적힌 그대로의 여정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출발은 일천문부터 한다. 일천문은 도보트레킹의 시작점인데, 일천문과 가장 가까운 홍문红门까지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홍문에는 매표소가 있고, 옆에는 불상을 모신 작은 사찰이 있었다. 홍문 매표소는 이 사찰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는데, 앞으로의 여행길이 평탄하길, 그리고 태산 등정을 무사히 완료하길 빌기 위해 이 사찰로 들어갔다. 안에는 향냄새가 진동했다. 중국의 향은 무척 독하다. 가느다랗고, 은은한 향기가 나는 한국의 향과 비교하면, 그 크기부터 다르다. 작고 얇은 한국산 담배와 서양의 두텁고 독한 시가의 차이랄까. 향 하나인지, 여러 묶음인지 붉은색으로 두텁게 싸여서 그 크기도 다양한 만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가장 작은것도 만만치 않은 가격으로, 이 향은 향후 각 지역 사찰이나 사당 어디에서나 보게된다.
향을 하나 구입하려다 관뒀다. 아마 태산할머니라는 이 분도, 너무 진동하는 향냄새는 싫어하실테니깐.
문에 들어서자마자 각 방위에 불상이 놓여 있었으나, 한국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각각 합장반배로 인사를 하고,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 봤다. 위에는 비슷한 구조로 각 신당에 신상이 모셔져 있었다. 중앙에 자리잡은 신상(아무리 봐도 불상으로 보이지 않기에 그냥 신상으로 표기한다.)에는 "타이산나이나이泰山奶奶"라고 이름표가 놓여 있었는데, 글자 그대로 직역하자면 '태산할머니' 정도가 된다. 이 분께도 역시 인사를 올리고, 이 사찰에서 가장 신성스럽게 생각하는 듯 하여 불전함에 돈을 얼마간 넣었다. 그리고는 무사귀환, 학력정진 등등과 더불어 가족평안까지, 넘치지 않을정도의 소망을 풀어놓았다.
그런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한 남자, 슬그머니 다가와 나에게 기도하는 자세를 알려주겠다며, 자기가 직접 시범까지 보인다. 이 중년의 남자, 무슨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 듣겠다. 아직 남쪽으로 내려온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방언의 벽에 부딪히다니. 자세를 보고 나도 따라했다. 그러고선 나에게 묻는다. 이 분이 누구신지 아느냐고.
"태산할머니? 이분이 누군데요?"
이 물음이 나에게서 십오분이란 귀중한 시간을 가져갈 줄이야. 이 분은 불교에서 전해내려오는 태산의 수호 할머니란다. 태산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신령스럽게 생각 했었는데.. 에서부터 시작하여 불교와 도교의 기원, 향을 사르고 자물쇠(이것 또한 중국 어느 사찰이나 산을 가든지 흔히 볼 수 있었다.)를 채우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너무나 원론적이고, 뻔한 내용이라서 지루해지기 시작 하였으나, 그 열정적인 모습에 나 또한 감사함을 느껴 경청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큼지막한 '자물쇠' 로 옮겨갔다.
어디선가 묵직한 자물쇠 하나를 가져오더니, 그걸 들어보라고 한다. 그러고는 두 손에 들고 절을 시킨다. 난 이미, 그 신령스러운 어떠한 힘에 압도되어, 시키는대로 삼배를 했다. 자물쇠를 손에 든 채로.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 소망을 빌라고 시킨다. 난 눈을감고 제법 중얼중얼 하며 소망을 빌었다. 물론 한국어로. 과연 저 태산 할머니가 알아들었을까 싶어, 중국어로 되새겨 본다. 아저씨가 묻는다.
"자, 소망을 다 담았니?"
"
"
"
"
"..."
"자, 이제 여기에 자물쇠를 채울꺼야. 그리고, 저 커다란 향을 하나 피우고 잠시 기도하면 돼. 향은 클수록 효과가 있지. 이제 여기에 채운다??"
"
싫어요. 라고 한마디 하고 베낭을 메고는 내려와버렸다.
산행을 하면서 숱하게 마주치는 불상, 신상. 그리고 그 앞에는 어김없이 불전함과, 자물쇠, 향이 있었다. 심지어는 이런 곳에서 "향 하나 피우세요, 자물쇠 하나 채우세요, 소원이 이루어집니다."라고 호객까지 하고 있으니, 이 어찌된 일인가. 마땅히 조용하고 신성시 되어야 할 사찰, 사당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 하다니. 그걸 하나의 '점포'로 생각하고 있으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세계에서 가장 미신을 숭상하는 나라, 중국. 그런 중국이기에 해마다 이곳에서 폭죽장사, 향장사, 복福자 스티커 장사들은 큰 이문을 남긴다. 게다가, 신종 사업인 자물쇠 장사. 자물쇠를 걸 수 있는 공간, 파이프, 쇠사슬과 자물쇠만 있으면 언제든 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수많은 중국인들은, 이 자물쇠를 구입하고 그곳에 소망을 담아 꼭꼭 채워둔다. 적당한 분량(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 끌 만큼)의 자물쇠를 남기고, 매일 넘쳐나는 이 자물쇠를 적당히 끊어 버리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이 자물쇠를 구입하여 가족평안, 건강, 재물 등의 소망을 담아 기원 한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자물쇠는 언제까지고 남아있기를 빌고 또 빌어야 할 것이다. 하긴, 그것 자체가 운이니, 사라진 자물쇠 주인의 소망은, 들어주지 않겠단 하늘의 계시일지도.
사찰 경내든, 외부든, 어디서든 중국인들은 크게 떠들고 소란을 피운다. 저 목청은 얼마나 큰 용량을 가졌는지, 하루종일 저 상태로 떠들고도 힘이 넘치는걸 보면 참 대단하다 느낀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공자묘孔夫庙에서 다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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