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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

기간 2007.9.8 ~ 2007.9.16 (8박 9일)

컨셉 나 홀로 떠나는 여행

경로 자광각 → 반산사 → 옥병봉 → 천도봉 → 황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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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선택과 좋은 선택 사이에

순간의 결정이 있었을 뿐이다!
  작은 역에서 빈 좌석이 없다면 가까운 대도시로 나간다면 대안이 생긴다. 나에게 제남济南이 그런 곳이었고 남경 또한 황산으로 가기 위한 경유지일 뿐이다. 시간 관계상 숭산을 제외한 지금, 황산에서 화산이 있는 시안으로 가기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은 정주郑州이다. 서안西安에서 사천성四川省 청도成都만도 16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인데, 그 전에 최대한 시간을 아끼자면 황산에서 정주를 거쳐 서안으로 향하는 수 밖에 없다. 남경에서 나름대로 알짜배기 관광을 마친 지금, 오후1시 47분 발发 난징-황산 구간의 열차 안에 있다. 과연 이것이 잘 한 선택인지.. 이 기차, 가격이 너무 싸다 싶었는데 언제 도착할 지 모를 속도로 가고 있다. 제발 오늘 안에만 도착하길. 그보다 일정을 좀 앞당기고 마지막 목적지를 청도로 할 것인지도 다시 고려 해 봐야겠다. 청도에서 베이징까지 가는데 고박 하루반나절이 걸리니, 시간 맞추어 베이징까지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난 지금, 닭장같은 기차에 앉아있다. 다행히 좌석은 있지만, 앞에 앉은 할아버지의 줄담배가 내 호흡을 방해하고, 글씨 쓰기조차 힘든 흔들림은 내 손과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잠이나 자야지. 그것조차 쉽지 않으리란 것을 잘 안다.

닭장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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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리는 기차안에서 억지로 누워 자고 있었다. 한 삼십여분, 달게 자고 있는데 한 작은 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탄다. 난 그냥 신경쓰지 않고 누워있기로 했다. 지하철처럼, 지정좌석이 아니라서 옆자리에 아무도 없으면 작은 침대칸에 탄 것과 같았다. 바로 전날 남경으로 올 때 열차에 올라서 이렇게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인들을 속으로 욕했는데,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니까 똑같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 칸에 빈 좌석이 많은 편이어서 나의 잠을 사람들이 방해하진 않았다. 하지만, 오르는 사람이 많다 싶더니 잠시후 누군가가 날 깨운다.

 
"이봐요, 이봐요, 일어나봐요!! "
짐짓 모른척. 하지만 계속 부르더니 이번엔 아예 흔들어 깨운다.
"이봐요, 여기 옆자리 사람 있어요?"
있 을턱이 있나... 난 할수없이 일어났다. 활짝 웃는 젊은 여자. 하나, 둘, 셋. 남자 한명까지 총 세명인 일행이었다. 좀 과격하긴 해도 고맙다며 나란히 끼여 앉는 그들을 미워할 수 없었다. 난 다시 엎드려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책을 읽으려 했다. 관상학 책. 이번 여행에서 독파하리라 마음먹고 챙긴 책이야. 생각보다 재밌었다. 3일 여행중 이미 절반가량을 읽었다. 앞에 보이는 중국인들의 관상과 대조해보며, 재밌게 읽어내려가는데 옆자리 여자들이 자기들끼리 낄낄거린다.
"혹시, 외국인이세요? 와, 전 리리 이쪽은 샤오팡이에요.(小胖 : 작은 뚱돼지라는 뜻으로, 설마 이 글자이겠냐마는, 발음이 같아 나도모르게 웃었다.) 일본인? 한국인?"
"한국인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전 XX라고 해요."
이 야기를 해 보니, 나이는 나보다 어렸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는데 둘이 같은 옷을 입고 있다. 교복은 아닌듯 하고, 뭔가 궁금해 했는데 그냥 묻지 않기로 했다. 둘이 절친한 친구인가보다 하고 결론지어버렸다. 잠시 후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큰 흥미를 느낀 한 남자아이 한명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름은 밍칭明青이라 했다. 나이는 열아홉인데, 흥미롭게도 브레이크 댄스를 춘다는 것이었다. 내일 시합이 있어 난창南昌으로 가는 길이라는데, 시골에 사는 아이 치고 무척 세련됬다. 젊은아이라서 그런지 방언이 심하지 않아 제법 말상대가 되었다. 내가 틀린 부분은 고쳐주는 친절함까지. 대부분 중국인들은, 내가 틀린 부분이 있어도 소통에 지장이 없으면 그냥 넘어간다. 이 아이는 자기가 살면서 처음본 외국인이 바로 나고, 외국인 친구가 생긴것이 무척 기쁘다고 했다. 가는동안 이 아이 덕분에 지루하진 않겠다 싶었다. 조금 가다가 중간의 한 역에서 두 여자아이가 내렸다. 웃으며 작별인사를 하고 내린 다음에 나는 그 남자아이에게 물었다. 저 둘이랑 친구냐고, 왜 둘이 같은 옷을 입고 있냐고. 그랬더니, 그 둘은 지금 일하러 가는건데, 둘 다 아디다스 매장에서 일한단다. 매장 유니폼이었군.
시간이 흐르고, 그 아이는 이런 기차여행에 익숙한 듯 전혀 지루해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대화도 한두시간이지, 좁은 자리가 불편하고, 점점 어둠이 깔리는 바깥 풍경은 언제 도착할 지 모를 불안감까지 안겨주었다. 잠시 후, 그 아이가 요구르트와 음료수를 사왔다. 쑤안니우나이酸牛乃라 부르는 요구르트는 한국의 떠먹는 요거트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미안해하며 고맙다고 하자 괜찮다며, 첫 외국인 친구에게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는 밍칭. 도시에서 보아왔던 중국 젊은이들과 또 다른 모습이었다. 깔끔하고 때묻지 않은 모습. 나 또한 좋은 친구를 만난것에 고마워 했다.
pm 5:15
아직 네시간 넘게 더 가야한다. 어제 일곱시간 잉쭈어로 난징까지 한 여행은 장난이었다. 바보같은 짓을 했다. 이 열차가 이렇게 완행인 줄 알았다면 더 비싸더라도 그냥 다음 기차를 이용했을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 중국 친구도 한 명 알게 되었고 다 경험이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황산의 온천구에서 하루 머물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목적은 황산이다.
중 간지점인 마산이란 곳에서  웬 용감한 여자 둘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내 잠을 깨웠다. 평화롭던 내 자리 옆과 맞은편에 시끌시끌 앉아있던 한 무리의 친구들이 내가 정신 못하리고 있자 막 말을 건다. 꽤 오랫동안 내가 한국인이란걸 모른다. 그저 표준어를 쓰는 북방 쪽 사람 정도로 알았을 것이다. 나중에 내가 한국인인걸 알고는 적잖이 놀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물었다. 황산은 어디쯤인지. 아직 한참 남았다고 한다. 밤 열시나 되어야 도착한단다. 다섯시간 거리를, 열시간에 가려니, 갑자기 속이 쓰렸다. 시간이 생명인 이번 여행에, 다섯시간 손해는 치명적이다. 역 주변에 제발 허름한 여관이라도 있기를. 여행이 점점 고달퍼지고 있다. 그런만큼 기대되고 기쁘다. 오랜만에 겪는 좋은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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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칭이 컵라면을 사 온다. 마침 저녁시간이긴 했으나 별로 생각이 없었던 나에게 거절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두개를 사와 하나를 내민다. 저녁시간인데 배고프지 않나고. 내가 미안해하며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받을리가 없었다. 자긴 중국인이니까 나는 손님이나 다름 없다고. 나중에 자기가 한국에 갈 일 있으면 맛있는거 사 달라며 웃는다. 그 모습에 계속 거절하는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 염치없이 또 받아 먹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가방에서 금속으로 만든 인형을 꺼낸다.

"와.. 이거 모양이 신기하네. 가만가만, 나사랑 철사로 만든거잖아? 이건 못이고, 우와. 이거 직접 만든거야?"
"아니요, 내 친구중 이거 만드는 애가 있는데 그 애가 만들어 준거예요. 이건 피리부는거, 이건 기타치는거, 이건 플룻. 맘에드는거 한번 골라봐요. 하나 줄게."
"아 정말? 에이.. 지금까지도 해준게 많은데, 어떻게 달라고 그래? 그냥 사진이나 한 번 찍지 뭐."
"아니예요, 저는 또 많으니까. 하나 줄께요. 친구 된 기념으로."
"친구 된 기념이라니깐 받긴 받는데, 난 마땅히 줄게 없는데 어쩌지? 음.. 그래. 이거 줄께."

여행 내내 들고다니며 기록하던 볼펜을 건넸다. 값나가는 물건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소중한 물건이고,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합당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 된 기념으로.

"와, 나 녹색 좋아해요. 고마워요!!"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받은거에 비해 준게 너무도 하찮아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pm 9:00
황산역 도착.
호 객꾼들이 나와있는것을 보니 숙소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문제는 정주로 가기위한 기차표 예매다. 남경은 많은 도시로 연결되는 수많은 철도와 버스로 교통의 요지이다. 정주 또한 그렇다. 정주는 지도상으로 중국의 정 중앙에 위치하므로 동남에 위치한 남경에서 숭산으로 가려 한다면 정주를 거쳐야 했고, 뤄양이나 시안으로 가 화산으로 가려고 했어도 반드시 정주행 티켓을 구해야만 한다. 시안에서 황산까지 연결되는 직통이 없으므로 정주를 거쳐서 가려 했는데, 그게 여의치 않게 되었다. 황산발 정주행 열차가 없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일정 중 하루를 이동시간으로 써야만 한다. 좀 무리가 따르더라도 황산에서 1박을 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당일 저녁 남경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시간상 손해는 없는 셈이다.
모레쯤엔 화산을 오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해 본다. 태산도 힘들었지만, 황산은 더 힘들단다. 황산에 비해 화산이 더욱 험준하다고 하니, 갈수록 태산이란 말은 맞지 않는 셈이다.
기 차역에서 내려 숙소 호객꾼과 흥정하여 매우 싼 값에 투숙하게 되었다. 그러나 청결도나, 시설면에서 크게 실망스러웠다. 그 정도 가격에 이 정도면 합당한 일이지만, 아침이슬을 피하는 것 이외에 어떤 다른것도 기대할 수 없는 숙소. 이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 가격은 나쁘지 않지만, 잠이 올지 모르겠다. 오늘의 교훈. 호객군을 믿지말자!
맥주 한칸에 피로를 풀고, 내일은 또 새로운 시작이다. 황산 정복을 위해. 건배
준비, 그리고 출발.
9월 11일


   시간만 허락한다면, 2~3일 정도 황산에서 머물고 싶지만 현재로선 조금 무리가 따르는 여정을 감행해야 한다. 우선 정상 정복을 한 뒤 풍경을 감상하며 내려오자.

am 8:00
아 침부터 기분 망쳤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싼게 비지떡이다. 그러고 보면 너무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적당한 가격을 찾아내는 요령도 필요한 것 같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장사꾼은 절대!!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파는데 도사고, 나는 햇병아리일 뿐이니 너무 스스로를 탓할것은 없지만, 여행 좀 다녀봤다고 하면서 아직도 호객군에 휘둘리다니. 아직도 한참 우매한 나를 발견하게 된 작은 사건.
숙소에서 여섯시 반에 출발하는 차를 놓쳐 하는 수 없이 여덟시에 출발한다는 차를 타려고 여관 주인에게 이야기 하자 나를 작은 차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차가 작고, 차 주인의 인상이 맘에 들지 않아(간사한 인상.) 처음부터 찝찝했는데, 승차한지 10분, 15분이 지나도록 출발하지 않는 것이었다. 곧 출발한다는 말만 반복할뿐 시동조차 걸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여유만만이다. 내려서 다른 큰 버스를 타고 가려고 하는데 한사코 만류하면서 곧 출바하니깐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 뿐이다. 도대체 언제 출발하냐면서 재촉하면 또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려는 기사. 이 조그만 봉고에 여섯 일곱명 태웠으면 됐지, 또 얼마나 더 태워 가려고? 이 기사의 욕심에 귀중한 시간을 날릴 순 없지. 막 내리려고 할 때 어떤 성질 불같은 중국인과 기사 사이에 싸움이 붙었다. 원래 강한 어조의 중국어라서 처음에는 몰랐지만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서로 좋지 않은 말들이 오가는 것이 분명했다. 그 틈을 타 나는 짐을 모두 챙겨 슬금슬금 나왔다. 그 기사가 갑자기 이리로 뛰어와 나를 붙잡는다. 어디가냐고, 금방 출발한다고 하며 얼른 올라 타라는 기사. 너무 얄미웠다. "아까부터 계속 그소리. 니말 못믿겠으니 난 저 큰차 탈래!!" (물론 중국어에 '존칭'은 있으나 반말, 존댓말이 어디있겠는가. 그저 기분나쁘면 반말이지.)
집요한 기사, 자기 손님 태웠다고 내가 바꿔 탄 버스의 기사와 또 한차례 설전을 벌인다. 지독한 인간.
드디어 황산!!

참고자료 :
http://www.chinatravel.co.kr/tourinfo/tour_place/mt/whangsan.htm
http://www.chinaemb.or.kr/kor/djzg/zpd3/2zpd2/t182446.htm
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 황산의 입구에 도착했다. 황산 등반을 위한 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좀 가파르지만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자광각慈光阁 - 연화봉莲花峰 코스와 경사가 완만하고 볼거리가 많지만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온천구 코스. 자광각까지는 정부 운영 투어버스로 가고, 자광각의 터미널에서 황산 기차역까지도 버스가 다닌다. 자광각에서 케이블카가 옥병봉玉屏峰까지 연결되어 있고, 옥병봉에서 정산인 연화봉이나 아찔한 경사로 유명한 황산 제 2의 봉우리인 천도봉天道峰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자광각 터미널에 큰 베낭을 맡기고 작은 가방에 지갑, 생수, 과도, 휴지, 카메라 등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겼다. 네시간 거리를 세시간만에 가야하니 서둘러야 한다.

열시 반, 드디어 등정 시작.

황산은 왜 황산인가

[황산은 옛날에 "묵산"(默山)으로 불리웠다. 전설중의 황제(黃帝)가 이곳에서 수련연단(修身煉丹)한 연고로 당(唐)나라 천보6년(天寶六年)(747년) 황산"黃山"이란 이름을 황제로부터 하사받았다. 천도봉(天都峰), 연화봉(蓮華峰), 광명정(光明頂)은 황산의 3대 주봉, 깎은듯 치솟아 아아히 구름속에 우뚝서있다. 연화봉 해발은 1,873m로서 황산의 최고봉. 황산은 한수의 소리없는 시, 입체화를 방불케 하며 "기송(기이한 소나무), 괴석(괴상한 돌), 운해(구름바다), 온천"(奇松, 怪石, 云海, 溫泉)등 4대 경관으로 유명.]


하다고, 주중 한국 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다. 기송, 바위와 절벽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꺾여 자라나는 소나무, 자연의 신비 그 자체다. 괴석, 황산 자체가 하나의 괴석이다. 일흔 두개의 봉우리 하나하나가 조각한 듯 서 있다고 하나, 다 볼 수 없으니 그저 옛 사람의 글을 참고로 할 뿐이다.
아무리 그러하다 해도, 내 눈앞에 펼쳐졌던 절경을 지금 이렇게 글로 옮긴다는게 너무도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어가 한없이 부족하고, 모든 화려한 수사가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진다. 보지 않고서, 황산을 논하지 말라. 이 말이 황산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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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시간여 걷다가 중턱쯤에서 한 무리의 중국인들을 만났다. 무척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카메라 좋다고 칭찬하자, 좋아하면서 고맙다고 한다.
"여기서 연화봉까지 얼마나 걸려요?"
"연화봉이요? 한 두어시간 걸으면 될텐데, 오늘 정상 등반은 힘들꺼예요. 바람이 많이 불어서 천도봉, 연화봉 다 통행이 금지되었거든요."
"네, 상황이 좋아지면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보통 바람부는 날씨가 금방 좋아지지는 않으니, 운이 좋으면 그리 되겠죠."
정말 아쉬웠다. 정상을 밟는것이 목적이었지만,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어찌되었건, 오르다 보면 진실을 알 수 있겠지. 다시 힘을내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렇게 오르다 보니 등반을 시작한지 두시간 반 만에 반산사半山寺를 지나 옥병봉에 이르렀다. 주위는 쏟아질듯한 봉우리들, 나를 압도하는 광경은 피곤함마저 잊게 만들었다. 하지만, 허기까지 잊게하지는 못했다. 오면서 사먹은 '황산 특산' 이라는 한국과 똑같은 조그만 키위 몇개, 사과 하나. 이게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은 전부였다. 산 위의 매점, 비싼줄은 알지만 굶어죽느니 세배의 가격을 주고라도 사먹는게 백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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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컵라면 하나, 물 한병이요. 아, 그 안에 기름, 그거는 빼주세요."

(중국식 컵라면중 내가 제일 사랑하는 '캉스푸康师傅'표 라면. 중국 컵라면 안에는 이상한 기름같은것이 있는데 이것을 빼고 먹는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어렵사리 깨달았다. 그래도 즐겨먹진 않는다. 한국 컵라면 만세!)

라면을 먹고, 비상식량으로 챙겨온 소세지를 먹으니 한결 살 것 같았다. 죽여주는 풍경과 함께먹는 라면. 둘이 먹을것도 없지만, 아무튼 잊지못할 맛이다. 옆에서 내가 게눈감추듯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국인. 한숨 돌리며 말을 걸었다. 목에 무언가 걸고 있는 모습이 가이드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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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연화봉도 못 올라가고, 천도봉도 못 가고, 정말 아쉽네요."
"네? 지금 천도봉은 가능해요. 제가 모셔온 분들도 지금 몇몇은 천도봉 올라가셨어요."
이런 반가운 소리가. 나에겐 천금보다 더 귀중한 정보였다. 연신 고맙다고 하고서 급히 자리를 정리하고 출발하려 했다.

"카메라 잊지 마세요."

잊고있었다. ;; 귀중한 정보에, 급한 마음에 카메라를 두고 가려는 나를 불러서 챙겨주기까지 하는 고마운 가이드. 그 가이드를 뒤로하고 힘차게 천도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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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 60도


   60 도 경사. 상상이 되는가. 난 그냥 과장된 말이려니 했다. 근데 막상 천도봉을 오르는 계단을 아래서 올려다 보니, 구불구불 끝이 보이지 않고 오르다가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아찔함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태산을 오를때의 그 마음가짐. 마지막 남천문으로 가는 관문이었던 '십팔반十八盘', 그 가파름은 몸을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 만큼 마음속에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지금은 무거운 배낭도 없고, 그때만큼 지치지도 않았다. "하늘아래 오악이 있고 황산에 오르니 오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라며 옛 사람이 극찬했던 황산. 높이는 설악산보다 조금 높고, 한라산보다 조금 낮은 정도지만 그 험준함과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하늘아래 황산' 이라 불릴 만 했다. "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도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 양사언(1517-1584)" 이 진리는 황산에서도 통했다. 아무리 산이 높아도, 목표가 멀다 해도,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目的地일 뿐이다. 그것이 꿈이든, 산봉우리든 간에 난 한걸음 한걸음 걷고있다. 그리고 해발 1810m의 천도봉에 도달했다.

pm 1:30

천도봉 도착

"산은 오르지 않으면 그 가치를 모르고, 봉우리에 올라서야만 비로소 전부全部를 볼 수 있다."
나는 현재 황산의 두 번째 봉우리인 천도봉에 있다. 높이는 두 번째 이지만 험준하기로는 제일인 이 봉우리에서 사방을 바라보니 천하가 내려다 보이는 듯 하다. 구름이 자연이 만든 장엄한 예술품에 감싸이듯 걸려있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없이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오전까지도 등산이 금지되었던 이 곳은 정말 운 좋게도 오후에 허가되었다. 그 험함에 사고가 많아 날씨에 따라 통행이 금지되기도 한다.
"풍경을 보며 오르지 말고, 오르며 풍경을 감상하지 말라" 라는 말이 정말 실감났다. 아찔한 경사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았다가는 실족하기 십상이었다.
기암괴석과 물이 많아 "살아있는" 듯 한 황산. 나는 그 중 빙산의 일각만을 보았을 뿐, 하지만 만족한다.
후일, 가족들과 함께 오고 싶었다. (엄마와 여동생은 케이블 카를 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미 별세하신 할아버지. 생전에 산을 정말 사랑하셨던 분이다. 아주 어릴적부터 나를 데리고 산에 오르시며 산에서 보는 세상은 어떠하다는 걸 늘 가르쳐 주셨던 할아버지. 내가 이담에 커서 더 높은 봉우리를 찾아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르리라 다짐 했었는데 운명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태산 정상에 올랐을 때와, 지금. 한결같이 벅차오르는 가슴이지만 그만큼 똑같이 가슴 한구석이 젖어온다. 이 봉우리에서의 감동, 그분께 전해졌기를. 결국 이렇게, 황산 등반도 그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제, 다음은 오악의 으뜸인 화산华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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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6:00
역에서 짐 정리를 하다.
pm 7:00
오랜만에, 저녁다운 저녁을 먹다.
참나, 이런 작은 동네에서 이젠 어딜가나 바가지다. 내 얼굴에, '여 행 객' 이라고 써있나? 하긴, 기차역 주변의 상점에서 커다른 배낭 매고 물과 맥주를 사는 사람이 여행객 말고 또 누가 있으려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여행객이 겪는 고충은 비단 바가지 뿐 아니다. 역 광장에서는 정말 많은 종류의 인간을 만날 수 있다. 그 중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호객꾼인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이것에 나서고 있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역에 도착하는 외국인이 여행객이 많지 않아서 내려 몊 발지국 걷기 전에 벌써 대 여섯이 붙어 끊임없이 말을 한다. 외국인인걸 모를때에도 쏼라쏼라 끊임없이 말하고, 외국인인것을 안 후에는 제법 유창한(?) 보통화, 영어로 자기들 상품(?)을 광고한다. 대꾸가 없어도 최소 삼십초에서 일분 이상은 따라다니고 그 업종(?)도 가지각색이다. 첫째로 아무것도 줄 것 없으니 돈이나 내놔라 라는 식의 '구걸'. 이 구걸의 형태도 가지각색. 자녀를 내세우는 일만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중 일이지만, 정주역에서 한 할아버지가 내 잔돈을 받고 연신 고맙다며 슬그며니 내 컵라면을 들고간 사건(?)은 후에 다시 이야기 하겠다.) 그리고 관광지도 판매, 생수 판매(이 생수도 다른 곳에서 그걸 마시고 머리가 이상하게 되지 않은 다음에야 절대 사먹지 말아야 할 것. 싸다고 가격을 깎을게 따로있지. 중국은 주류, 담배 뿐 아니라 물, 달걀도 가짜를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끼니때도 아닌데 밥 먹고 가라는 식당 종업원, 쉬었다 가라는(?) 여관, 마사지업소 등등. 빈 병이나 깡통을 탐내하며 물병의 물이나 음료를 얼른 다 마시라고 재촉하는 노인까지, 다시한번 이야기 하지만, 호객꾼을 믿지 말자! '색안경'을 끼고 최대한 그들을 경계 할 필요가 있다. 호객꾼을 만나 유쾌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이야기만 잘 하면 아주 좋은 조건에 좋은 가격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아쉬운(!)사람이 오게 마련이니까.
기차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서 기차역 광장에서 짐 정리를 했다. 여기저기 쑤셔놓은 물건들을 자주 꺼내지 않는 빈도로 차곡차곡 쌓고, 작은 가방의 무게를 줄였다. 그러는 사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다가와 내 물건에 호기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남방 사람들,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때론 말이 너무많이 짜증날 수 있으니 조심하도록.
근처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밥을 먹은 다음에 칭다오(이것도 가짜일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한캔을 들고 광장에서 사람구경하며 마시고 있었다. 그 때, 지도를 파는 할머니가 다가왔다. 하지만 이미 사지 않는다는 강한 의지를 표시했기 때문에 다시 안 올줄 알았지만 정말 집요하다.
"할머니, 저 지도 있어요. 여기 보세요. 황산 지도잖아요. 그리고 방금 산에서 내려와서 다시 갈 일도 없구요."
난 조근조근 이유를 설명했으나 연신 웃으며 자기도 팔아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
"이봐 학생, 지도는 많을수록 좋아(?) 이건 더 자세히 나와있구 게다가 새 지도를 황산 다녀온 기념으로 하나 사가라구. 기념으로."
지도가 많을수록 좋다구? 아무리 봐도 내꺼랑 똑같은데, 뭐가 더 자세하단 이야기인지. 아무튼 웃는얼굴에 침 못뱉는다고, 연신 웃으며 사라는 할머니에게 짜증을 내고싶지도 않고, 오랜만에 개운한 기분으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기에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제 가방에 이미 이렇게 많은 짐들이 있는데요? 기념품 넣을 자리가 없네요."
"가방이 이렇게 큰데 이것 들어갈 자리가 없겠어?? 그래도 안사? 안살거면, 그 다 먹은 캔은 나 줘."
아까 다른 할머니가 이 캔은 다 마시면 꼭 자기를 달라며 신신당부를 하고 갔었다. 근데, 이 분이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난 대답대신 캔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안에서 찰랑거리는 내용물 소리를 듣자 한마디 보탠다. "다 마시면, 나 줘!" 그러면서 또 이히히 웃으며 다른곳으로 가는 할머니. 하지만 계속 내 주위를 맴돌 뿐이다. 더 이상 기다리게 하시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 싶어 남은 반을 모두 마시고 옆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그때까지 계속 흘끗흘끗 이곳을 쳐다보던 할머니는 금새 달려와 캔을 들고 고맙다며 기뻐한다. 난 아까 천도봉에서 먹다 남은 '황산 특산'(?) 달래를 내밀었다. 하지만 고맙다며, 하지만 괜찮다고 점잖게 사양하시는 할머니. 캔을 들고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정확히 1분 뒤. 아까 캔을 부탁했던 다른 할머니(이분은 좀 심술궂게 생겼다.)가 오더니 캔을 누가 가져갔나고 묻는다. 난 짐짓 모른척 딴청을 부리자 그 할머니 왈 : "그 지도파는 늙은 할매가 가져간겨?? 그 망할 할멈 같으니. 에이!!" 하며 화를 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나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내 옆에 있는 열여덟 정도로 보이는 한 중국 친구가 그 모습을 보더니 자기도 웃는다.
"재밌어요?" 라고 묻자 말없이 미소만 짓는 예쁜 아이.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농촌에 가도 마찬가지예요. 빈 병을 주워 생계를 잇는 노인분들이 정말 많아요. 깡통은 값을 더 쳐주니까 저 할머니들처럼 그걸 달라고 하는거예요."
"아, 생활이 그렇게 어려워요? 하긴, 어딜가든 이걸 줍는분은 꼭 있던데."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가서 돈 벌고 싶어하니까 노인분들은 스스로 돌볼 수 밖에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한창 '무작정 상경'이 유행인 시절에 시골에 홀로 남겨진 노인분들의 생활은 이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것을 느꼈다. 나보다 한시간 늦은 열한시 기차로 광저우로 간다는 이 아이. 사는곳은 경제특구 선전巡诊이란다. 이렇게 해서 활발하고 솔직한 남쪽 친구를 한명 더 알게 되었다. 작별의 선물로 자신의 잘 나온 사진이라며 한 장 건넨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물이 더 나은데. 고맙게 받고서 떠나왔다.
pm 9:44
남경행 기차 탑승. 오랜만에 깨끗한 침대칸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잠 좀 자야지. 남경이 종착역이 아닌 관계로 다섯시 이전에 일어나 준비를 해야한다. 촛불을 챙겨오길 잘했다. 열시반이 되자 불을 모두 껐다. 어두운 곳에서 흔들리는 촛불에 글을 쓰기는 처음이다. 차장이 지나가다가 얼른 끄라며 재촉한다.

다시, 고도古都 남경으로.

이어,07' 중국 중남부 여행 [3부] - 서안西安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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