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중국 중남부 여행 [1부] - 태산泰山(1)
"처음 시작이 이후의 모든걸 결정한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결심이 어렵고, 결심은 하지만 그 실행은 더욱 어려운 법이다.
내가 중국에 처음 발을 디딘것은 지난 2002년.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당시였다.
우연한 기회에 왕복 항공권 경품당첨이라는 엄청난 행운을 얻은 나는 아버지와 3박4일의 짧은 일정으로 북경에 다녀가게 되었는데, 당시 북경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흐린 하늘의 도시'였다. 막 발전하고 있을 때여서 그런지 곳곳에 회색빛의 공사중인 건물들, 그리고 당장이라도 비가 올 듯한 흐린 하늘들. 사실 그 해 겨울 중동부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도 날씨는 내내 흐렸었다. 하지만 떠오르는 유럽의 이미지는 그리 흐리지 않다. 아마도 '지구상 거의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 라는 타이틀이 당시 베이징의 흐린 날씨와 함께 '흐린 도시'라는 이미지를 만든 것 같다.
당시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고도古都인 베이징의 주요 볼거리는 거의 다 본 것 같다. 현재 여행상품들이 패키지에 포함시키는 수많은 볼거리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만리장성, 이화원颐和园, 고궁古宮(자금성), 천안문 광장, 티엔탄天壇 등 굵직굵직한 광광지는 거의 돌아보았었다. 그리고 2007년 1월, 난 베이징으로 유학을 왔다. 대학에 입학 할 때부터 꼭 중국어를 배우러 이 곳에 오리라 계획 했었는데, 시기를 더 늦추지 않고 3학년 마치자마자 바로 온 것이었다. 그리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중국에는 명절이 많다. 우리나라의 설날과 같은 시기의 '춘절春节', '오일절五一节'혹은 '노동절劳动节'은 각각 약 1주일에서 보름을 쉬며 노는 상반기의 큰 명절이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우리나라의 추석 시기와 비슷하지만, 10월 1일부터 약 7일간 정해서 쉬는 국경절国庆节이 있다. 또 여름, 겨울방학. 마음만 먹으면 여행을 다닐 기회도 많고, 갈 곳도 많은 중국은 그야말로 여행의 천국이었다. 같은 반에서 만났던 여러 친구들은 모두 이러한 기간을 알차게 보내리라 하여 특히 오일절에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니는 모습이었다. 나도 무척이나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을 떠나는 가장 쉽고 간편한 방법은 여행사의 상품을 이용하는것. 비용도 절약되고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많은것을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또한 그냥 일반 여행자들의 발길이 닿기 힘든 오지로의 여행도 비교적 안전하게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성수기를 전후로 수많은 여행사들이 여행상품 광고에 여념이 없다. 실제로 내 주위에서도 이렇게 여행사를 이용하여 내몽고자치구, 티벳자치구 등 소수민족 삶의 터전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때는 중국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오일절. 중국 곳곳에 가는 곳마다 시끌벅적하고 사람으로 발디딜 틈이 없는 기간이었다. 주로 유명 관광지 위주로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은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숙소, 기차표 등등 여행중 필수항목의 예약과 구입이 쉽지 않은 기간이었다. 또한 개인 여행자들에게는 이 기간 각 호텔의 가격이 많게는 두배 까지 오른다. 학교에 수업이 없다는 것 이외에는 여행을 하기에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더구나, 나는 여행사 여행을 싫어한다. 빽빽한 일정에 중간중간 공장견학 등의 빌미로 상품판매를 선동하기 일쑤이고 그만큼 시간은 빨리 가지만 결국 남는것은 적은것이 여행사 여행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물론 짧은 기간에 효율적으로 여행하기엔 그만한 대안은 없는 듯 싶다. 하지만 과거 유럽여행때도 그랬고, 05년 제대 후 떠난 일본 배낭여행도 열흘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 시간을 아끼고 걸음을 배로하여 계획한 여섯도시 모두를 돌아봤었다. 수박 겉 핥기식 여행이라 할 사람들도 있겠으나, 가능한 많은 곳을 직접 지도를 보고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우리들이 계획했던 1도시 1사찰 방문 등 원칙을 지키고, 성취하는것에 목적이 있었으므로 충분히 성공적인 여행이었다고 생각 된다. 여행서와 지도, 그리고 자신의 판단과 두 다리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때문에 오일절기간에는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에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 들어서 그저 북경 곳곳의 가보지 않은 곳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여행을 대신했었다.
여기저기 계획해서 여행을다니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었다.학기중 마땅히 함께 갈사람도 없고,혼자 훌쩍 떠나려니 아직 모자란 나의 언어실력과 경험이 자꾸 맘에 걸렸다.그럼에도,혼자 떠나는 여행에대한 동경,환상이 자꾸만 내 등을 떠밀었다.'차라리 잘되었는지 모른다.중국에 혼자와서 누군가를 깊게 사귀지 않은것이혼자 여행을떠날 기회를 만들어주는구나.'라고생각했다.부모님은 계속 혼자 떠나는 여행을 반대하셨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그리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치안 수준에, 곳곳에 여행객들을 위협하는 무리들이 몇천만은 넘을테니, 걱정 하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모든걸 운명에 맡기고 스스로 조심하며 더 미루지 말고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2007년 9월 8일. 그동안의 학원 수업도 모두 마쳤고, 열흘 뒤면 학교 수업도 시작해서 더 미룰 수 없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또 예전처럼 치밀한 계획을 짜야한다. 9월 7일 이전에 원래 계획되었던 큰아버지와의 백두산 여행이 좌절되고, 또 사천성 청도 여행마저 여의치 않게 되어 더 기다리지 않고 나 혼자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9월 7일날 지도를 보고 루트를 정했다. 모든 여행에는 테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넉넉히 시간을 두고 한 지방을 모두 섭렵하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시간이 한정되어있는 상황에서는 '각 지방 사찰 기행', '각 지방 박물관 기행' 등과 같이 목표를 정하여 그 목표는 반드시 이루고, 남는 시간에 다른 볼거리를 더 찾아보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난 처음 이동경로를 생각 할 때부터 '산'을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동선을 생각 해 보니, 몇 군데 중국의 명산을 연결할 수 있었다. 그 첫번째 관문이 산동성에 있는 태산이었다.
준비기간은 단 하루였다. 전날 밤 늦게까지 여행책자와 지도를 보며 동선을 짜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추려 배낭을 꾸렸다. 대충 동선이 나오자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기차가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목적지에서 다음 목적지로 바로 연결되는 기차노선이 없다면 다른 대도시를 경유해야 하기 때문에 적잖이 시간낭비가 될 터였다. 천만 다행인 것은 우리학교의 개학시기가 늦어서 대부분의 다른 학교들은 이미 개학을 했다는것. 하지만 늦여름, 등산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것 또한 나에게 우려로 다가왔다.
빼놓지 않고 모두 챙기려면 마인드맵 만한 것이 없다. 생각을 정리하는데도 유용하지만, 이렇게 짐을 꾸릴때도 매우 유용하다. (나처럼 건망증이 심하다면 더더욱.)
배낭을 큰 것을 챙길지, 좀 작은걸 가져가도 좋을지 고민된다. 여름이기 때문에 큰 베낭이 필요 없을수도 있지만, 또 혹시 모를 일. 처음에 큰 배낭(정말 큰)을 꺼내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역시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것이 옷인데, 입고가는 티셔츠와 바지 이외에 여벌로 하나, 반바지 하나, 티셔츠 두장, 속옷, 양말 등등을 꾸리는데 이 큰 배낭은 공간이 많이 남았다. 그럼 짐을 좀 줄이더라도 그것보단 좀 작은게 낫겠다 싶어서 다시 배낭을 바꾸었다. 작은 배낭 하나와 옆으로 매는 새끼배낭 하나에 여섯파트로 나눠서 짐을 꾸렸다.
배낭속에 들어있는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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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손전등이 없어 임시로 초와 라이타를 챙겼는데 다행히 쓸 일은 없었다. 필기구는 잃어버리기 쉽고 부피가 적게 나가므로 넉넉히 챙긴다. 오전에 큰맘먹고 거금을 들여 트레킹화를 하나 장만했다. 다행히 세일하는 품목이 있어 약간의 할인을 받았는데, 여행 내내 트레킹화 덕을 톡톡히 봤다. 여행 특성상 걸을일이 많고, 산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발이 편하지 않으면 여행 내내 괴롭다. 큰 돈은 은행에 넣어두고 현금인출카드를 들고간다. 지갑에 같이 넣어두지 말고 큰 베낭 안쪽에 잘 모셔둔다. 혹시나 작은 배낭을 잃어버렸을 때에도 카드로 현금을 인출한다면 완전한 파멸로 가진 않을 것이다. 그 밖에 돈도 일부분 나누어 큰 배낭과 작은 배낭에 넣어둔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모든 준비를 한다.
짐을 챙기고 나면 할 일은 기차표 예매, 은행에 계좌를 만드는 거였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은행은 공상은행, 중국은행, 그리고 건설은행이였다. 나는 건설은행에 많들었는데 어디든 깔끔한 24시 인출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그 다음, 준비과정 중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빈 집 단속이다. 콘센트는 모두 뽑고, 빨래는 남기지 않고 모두 해 놓는다. 싱크대 주변정리, 귀중품 보관이 끝나면 거의 마무리. 이제 떠날 준비는 거의 끝났다. 다행히 내가 사는 기숙사는 각 층의 종업원이 매일 청소를 해 준다. 장기간 방을 비워도 하루에 한번은 반드시 들어올테니, 화분에 물 주는걸 부탁했다.
정오에 제남 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가격은 인민폐 119위엔. 우다코 전철역 근처에는 시내 매표소가 있는데, 수수료 약간만 내면 역까지 가서 표를 사야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좌석 점유율도 높은 편이어서 비교적 편리하다. 잉쭈어푸콰이워(보통빠름침대기차) 베이징발 제남행 기차표를 사고 나니 드디어 출발한다는 실감이 났다. 출발시간은 오후 10시 54분, 제남에 도착하는 시간은 다음날(9일) 아침 5시 10분이었다. 중국에서의 첫 기차여행이다. 중국은 다른 모든것(?)은 연착되도 기차만큼은 정시출발을 지킨다고 한다. 시간 늦지 않게 좀 일찍 나서야 겠다.
※ 앞으로 아래의 형식으로 현장에서 쓴 메모를 첨부한다.
-9월 8일-
pm 6:40
거의 모든 준비를 마쳤다.
숨가쁘게 하룻동안 여정을 계획하고, 물품을 챙기느라 벌써부터 힘이 들지만 의욕은 넘치고 지치지 않는다.
앞으로의 여행에서 누구를 만나고, 어떤일을 겪을 것인지...
초지일관. 이렇게 쉬워 보이지만 지키기 어려운 말도 없을것이다.
그래, 더도덜도 말고, 처음같이만 하자.
준비된 사항 중 미흡한 것이 있으나, 거의 다 챙겼다.
이제, 떠나는 일만 남았다. 베이징에서 제남으로...
pm 10:30
출발시각까지는 아직도 24분이나 남았는데, 열차가 베이징 시발차라서 그런지 일찍 탑승했다.
종착역은 제남. 산동성의 성도이자, 태산이 가까운 곳으로 교통이 편리한 도시이다.
베이징서역은 정말 컸다. 그 크고 웅장한 규모에 맞게 역의 시설도 신식이었지만 그 시설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중국인..
역시 역 광장은 시장바닥이었다.
잉워를 탔는데, 이 좁은 자리에 퀘퀘한 냄내...
바퀴벌레를 봤다. 저녁도 어찌 그리 자연스러운지...
도무지 구석으로 머리를 둘 수 없어서 물어봤다.
"어느쪽에 머리를 둬야 하나요?"
"수이비엔바!(니 맘대로 하세요!)"
하긴,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그냥 나 눕고싶은 방향으로 누우면 되지.
피곤하다. 하지만 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츨 쉐이궈라~!!"
과일 먹으라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이리도 정겨울수가. 정말 곳곳에서, 쏼라쏼라 하는 중국어다 들린다.
싸우는 듯한 저 억양, 영화 '무인 곽원갑'이 생각난다.
정말, 구수한 중국어다. 하지만 저 과일은, 먹고싶지 않다.
도착지 정보를 확인하고, 잠이나 자자.
줄발지 BEIJING 지도와 첫 번째 도착지 JINAN